나를 찾아가기

Created at 2026년 01월 18일

Updated at 2026년 01월 18일

By 강병준

AI가 너무 빠르게 발전한다. 새로운 기술, 방식, 환경이 하루아침에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주변을 보고 있자면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사람이 있고,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파도를 타는 사람들은 너무나 멋지고 화려해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나도 옆에서 함께 파도를 타는 상상을 하게 된다.

함께 파도를 타고 싶지만,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겁을 먹은 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분명 겁 없이 막무가내로 도전하고 재미를 느끼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하면 되지”를 입에 달고 살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결국 해내고를 반복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는 그 순간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다. 밤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코드를 짜던 재미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한 이후 이 재미가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단지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그랬던 걸까? 책임감이 생겨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코딩이 재밌다고 착각했던 걸까? 자연스레 머릿속에 여러 의문이 생겼다.

다들 나름대로 지향하는 가치나 목표가 있고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언제 재미있고 행복한 걸까? 왜 생각나지 않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팀에서 내가 만든 AI 도구가 적극 활용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리고 이걸 문서로 만들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나를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일하기

나는 내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그냥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는 게 좋았다. 사용자 경험을 개선했을 때는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좋았고, 개발자 경험을 개선할 때는 우리 팀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편리함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뿌듯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에서도 나는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고, PR이 올라오면 AI가 팀의 맥락을 이해하고 코드 리뷰를 도와주는 단순한 도구에서 시작됐다.

내가 만든 도구가 PoC 차원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실패하고 버려지도록 두고 싶지 않았고, 팀원들에게 진정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거듭나고 싶었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AI 덕분에 높아진 생산성을 어떻게 하면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생산된 코드를 어떻게 더 잘 리뷰하고 검증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시화하여 개선하는 것을 반복하고, Claude Code Action, CodeRabbit 등 레퍼런스를 찾아서 새로운 기능들을 하나씩 붙여나갔다. 어느샌가 이 기능들은 개발 전반은 아우르며 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AI라는 거대한 파도 아래에서 맘껏 파도를 탈 수 있는 서핑보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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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이 만들어지면 AI가 개인별로 개인화 리뷰를 수행하고, PR이 머지되기 전에는 AI를 호출하여 빠르게 코드를 수정한다. 그리고 PR이 머지되면 개발자들이 실수한 부분이 다음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피드백을 저장하고, Claude가 놓친 리뷰를 GPT와 Claude가 다시 한 번 심층 리뷰를 진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팀원들은 AI를 활용한 새로운 개발 방법론을 다양하게 도입하며 빠른 개발 속도를 챙기면서도 안전하게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공유하기

도구를 만드는 것과 누군가 도구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아무리 잘 만든 도구라도 아무도 쓰지 않으면 그건 그냥 예쁜 조형물에 불과하다. 전시해두고 가끔 구경하는 것으로 끝난다. 게으름에 빠져 내가 만든 도구가 전시장에 갇히지 않도록, 적어도 2주 간격으로 팀원들에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내가 만든 것을 공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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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이거 써주세요"가 아니었다. 팀원 모두가 새롭게 추가된 기능의 의사결정을 알 수 있도록, 동작 과정을 알 수 있도록 공유했다. 내가 만든 도구를 사용하기만 하는 사용자가 아니라 함께 도구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이런 나의 작은 바람은 팀에 작은 물결을 일으켰고, 이런 습관 덕분이었는지 팀원들은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AI가 리뷰한 내용을 스스로 Resolve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고, 머지된 PR에 대한 사후 리뷰를 진행할 때 Codex가 혼자만 리뷰하는 것보다 Opus를 Tool Call 방식으로 호출하여 크로스 체크하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피드백을 반영하며 개선해가다 보니, 어느샌가 나의 욕심에서 시작된 도구가 모두를 위한 도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를 찾아가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입부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

나는 단지 친구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었고, 코딩이 재밌다고 착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결과물이 빛을 발하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일할 때 재미있고, 그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줄 때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찾는데 몰두했다. 하지만 회사라는 집단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나만의 경쟁력이 반드시 나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술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팀원들의 불편함을 발견하고, 팀원들의 불편함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팀을 위해 일하니 어느샌가 나의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들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할 때 시너지가 발휘해 더 가치 있고 보람찬 일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2026년은 지금보다 더욱더 큰 파도가 나를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팀이 있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 한 나는 이 파도를 탈 준비가 된 것 같다. 앞으로 큰 파도를 모두가 함께 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야겠다.